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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와 ‘대도시의 사랑법’ 대담 (하): 퀴어문학과 퀴어영화 겹쳐 읽기

2025년 2월 27일

오혜진ㆍ문아영ㆍ이문우

ⓒ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이언희, 2024. ⓒ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이언희, 2024.


문아영: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원작 속 재희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그 비중을 크게 늘리고 단톡방 내 성희롱과 데이트 폭력 등 여성 폭력의 문제를 덧붙여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영화가 여성 인물과 섹슈얼리티, 폭력 등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문우:

사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여성 폭력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해 조금 의문이 들었어요. 이언희 감독님의 필모그래피를 생각하면 분명히 본인이 관심이 있으셔서 이런 의제를 담았을 텐데,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아쉬웠던 것 같아요. 특히 극 중 약물 강간으로 의심되는 장면이 있는데, 이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갑자기 재희의 임신중지 에피소드로 넘어가는 연출이 여성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문아영:

저 같은 경우는 영화가 재희라는 인물을 통해 여성이 겪는 폭력을 다방면으로 다룬 것 같다는 평가를 많이 봤는데요. 이런 감상과 달리 저도 영화를 보면서 의아한 순간이 많았어요. 문우님이 말씀하신 장면도 마찬가지고요. 우리는 버닝썬 사건을 겪으면서 한국 사회가 얼마나 약물 강간을 가볍게 생각하는지 지켜봤잖아요. 그래서 애초에 영화가 해당 장면을 왜 넣었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무엇보다 저는 소설이 재희를 통해 소위 ‘문란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보여주려 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영화는 재희를 문란한 여자라고 오해받지만, 사실은 일대일 관계에서 로맨스를 갈망하는 인물로 만들었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어요. 심지어 영화에서는 재희가 임신중지를 했다는 것도 암시적으로 알 수 있을 뿐 소설 속 재희가 수술 이후 얼마간 힘들어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잖아요. 전반적으로 재희에 대한 묘사가 단순화되고 모두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여성으로 그려졌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오혜진:

약물 강간에 대한 두 분 말씀에 동의해요. 영화는 익명의 남자가 준 술을 받아 마신 후 다음 날 호텔에서 벗은 몸으로 깨어나는 재희를 보여주면서도 그걸 약물 강간 피해로 의미화하지 않죠. 그저 기다렸던 흥수가 오지 않아 상처받은 여자의 망쳐버린 하룻밤 정도로 묘사해요. 문제적인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영화 전반에 대해 말해보자면, 저는 영화가 소설의 서사적 얼개를 따르면서도 원작의 관점을 교묘하게 바꿨다고 생각해요. 영화에서 재희와 흥수의 서사는 대등하게 진행되지만, 더 돋보이는 인물은 재희죠. 김고은 배우가 연기한 재희는 쿨하고 예쁘고 무엇보다 진보적인 인권의식을 지닌 주체적인 여성이에요. 영화는 흥수가 재희의 결혼식에서 춤을 추고, 재희는 흥수에게 소개팅을 시켜주는 등 둘이 대등한 상호 교환 및 연대가 가능한 친구 사이임을 보여줍니다.
반면, 소설 「재희」는 ‘재희’를 보는 ‘나’를 초점화자 삼아 진행돼요. 이 소설이 출간됐던 시기에 쟁점화된 문제가 있습니다. 「재희」에서 시도되는 이성애자 여성과 게이 남성의 병렬에 대해서죠. 재희는 ‘나’가 비뇨기과에서 간호사들에게 “똥꼬충” 같은 혐오 발언을 들었다는 점을 통해 게이로서 겪는 고충을 이해하게 되고, ‘나’는 임신중지수술을 하려던 재희가 의사에게 폭언을 듣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여성이 겪는 차별을 이해하게 된다는 설정이 있어요. 게이 남성과 이성애자 여성이 소수자로서 연대할 가능성을 환기하는 설정이죠. 이에 대해 어떤 이들은 재희가 여성으로서 겪은 차별과 ‘나’가 게이로서 경험한 폭력이 과연 등가로 취급될 수 있는지를 질문했었고요.
영화도 이 같은 방식으로 이성애자 여성과 게이 남성이 소수자로서 경험하는 차별과 혐오 피해의 대차대조표를 그립니다. 다만 재희가 여성으로서 경험하는 피해는 단톡방 내 성희롱, 여자 속옷을 훔치는 스토커, 약물 강간, 임신중지, 데이트 폭력 등 온갖 사례들의 세목을 자세하게 보여주는 반면, 흥수가 게이로서 경험하는 고충은 커밍아웃과 아웃팅 문제로 국한되죠. 소설에서의 비뇨기과 장면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아요. 흥수가 HIV 감염인으로 상상될 가능성을 남겨두고 싶지 않았겠죠. ‘감염인 게이’는 여성 인물과 연대하고 그럼으로써 관객의 마음도 얻어야 하는 상업영화의 주인공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거예요. 흥수에게도 여느 20대 청년들처럼 연애와 결혼, 취직 등에 대한 고민이 있을 수 있는데, 영화는 게이 남성으로서 흥수의 고민을 철저히 ‘커밍아웃/아웃팅’ 문제로만 국한시킵니다. 그리고 그 고민도 결국 재희가 해결해 주죠.
무엇보다 소설 「재희」는 ‘이성애자 여성과 게이 남성의 우정과 연대’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불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소설에서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과 재희가 서로 다른 존재임을 깨닫게 돼요. 대학생 때는 ‘나’와 재희가 모두 ‘남자에 환장하며’ 방탕한 날들을 함께하는 소울메이트인 줄 알았지만, 졸업 후 재희는 이성애 결혼을 선택하고 부모님이 재테크 용도로 구입해둔 아파트를 신혼집으로 얻습니다. ‘나’는 그 과정을 ‘여우가 신 포도 보듯’ 바라보고요. 즉 재희와 ‘나’의 차이는 ‘헤테로 여성’과 ‘게이 남성’이라는 성적 지향의 차이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재희의 삶은 중산층 가정이 보유한 경제적 자산, 그리고 부모와의 돈독한 관계 덕분에 가능한 거죠. ‘나’에게는 그런 경제적·문화적·정서적 자본이 결핍돼 있고요. 그런 것들이 모두 재희와 ‘나’가 같지만은 않다는 걸 깨닫게 하는 요소들이죠.
그런데 영화에서는 재희와 흥수가 단지 성적 지향의 차이만을 가진 것처럼 재현돼요. 예컨대 흥수가 재희의 결혼식에서 미쓰에이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잖아요.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이 영화가 말 걸고자 하는 관객은 퀴어관객이라기보다 이성애자 여성이라고 확실히 느꼈어요. 소설에서 ‘나’에게 재희의 연애와 결혼은 이런 방식으로 수렴될 수 있는 사건이 아니거든요. 소설 속 재희의 이성애 연애와 결혼은 ‘나’에게 끊임없이 박탈감과 배신감을 선사하는 사건이에요. 재희는 ‘나’에게 자신의 결혼식에서 사회를 봐달라고 부탁하지만, 그마저도 ‘나’가 게이라는 점이 재희의 남자친구에게 밝혀지면서 유야무야됩니다. ‘나’는 애초에 법률혼을 할 수 없는 존재인 데다가 이성애자 친구의 결혼식에서마저 축출되는 존재인 거예요. 그런데 영화는 흥수가 재희의 결혼식장에서 춤을 추는 것으로 결말을 바꿔버렸어요. 의미심장한 개작이죠.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가장 불쾌했던 장면이자 퀴어감수성과 한참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 장면이 하나 더 있어요. 흥수의 커밍아웃을 들은 흥수의 엄마 명숙이 자살시도를 한 것처럼 보이게 연출한 장면입니다. 흥수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엄마에게 커밍아웃하죠. 그런데 자고 일어난 흥수는 늦은 밤에 말없이 집을 나섰던 엄마가 화장실 변기에 피를 토한 채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흥수는 너무 놀라서 오열하며 구급차를 부르고요. 결국 영화는 엄마의 피처럼 보였던 것이 실은 엄마가 마신 복분자주였음을 알려주며 관객의 웃음을 유도합니다. 하지만 어떤 퀴어관객이 그 장면에서 웃을 수 있을까요? ‘커밍아웃과 부모의 자살’이라는 문제가 퀴어에게 얼마나 트라우마틱한 문제인지 안다면 이런 것이 농담의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이문우:

소설 「재희」와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을 비교할 때, 영화가 훨씬 주인공의 커밍아웃과 아웃팅을 중요한 문제로 그리잖아요. 이런 부분이 박상영 작가님의 소설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에서 “영화 속에 퀴어를 등장시키기 위해서는 무조건 합당한, 그러니까 보통의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치명적인 ‘지점’”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떠올리게 하는데요.1)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의 커밍아웃과 아웃팅 재현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오혜진:

그것도 참 괴이한(?) 지점인데요. 영화에서 흥수보다 더 날카롭고 진전된 인권의식을 보이는 건 재희예요. 영화 초반부터 재희는 “네가 너인 게 어떻게 약점이 될 수 있어?”라면서 클로짓 게이인 흥수를 계몽하죠. 즉 재희는 인권의식도 뛰어난 데다가 예쁘고 쿨하면서, 가부장적인 고정관념을 비웃고, 취직에도 성공하는, 한마디로 능력 있고 매력적인 이성애자 여성입니다. 여성에 대한 여성의 판타지가 반영된 캐릭터죠. 반면 클로짓 게이인 흥수는 매번 커밍아웃을 주저하며 그 문제로 애인 수호와도 헤어집니다.
흥수가 엄마에게 커밍아웃하는 대목은 영화에서 흥수에게 일어나는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 중 하나에요. 그런데 이 사건이 배치되는 위치가 흥미롭죠. 재희는 자신과 흥수의 사이를 의심하는 남자친구 지석의 오해를 풀려고 흥수의 성적 지향을 지석에게 누설합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단지 재희가 흥수의 비밀을 폭로했다는 데에만 있지 않아요. 재희가 이성애자 커플의 관계를 안정화하기 위해 흥수의 성정체성을 소비했다는 점이 관건이죠. 단지 아웃팅만의 문제가 아닌 거예요. 이에 대해 흥수가 화를 내자, 재희는 처음에는 사과하더니 나중에는 태도를 바꿔 ‘언제까지 그렇게 숨어 살 거냐’며 흥수를 계몽해요. 이 대화 끝에, 흥수는 화가 나서 엄마 집으로 가지만 재희의 말이 동기가 돼서 결국 흥수는 엄마에게 커밍아웃합니다. 성소수자의 인권과 자유, 존엄의 언어조차 이성애자 여성의 계몽에 의해 발화된다는 점, 이성애자 여성을 성소수자 인권에 몽매하지 않은, 오히려 성소수자보다 훨씬 더 진취적인 존재로 그리려 한 게 이 영화가 (매력적인 여성이 되고 싶은) 여성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요인이라고 봐요.
게다가 영화에서 재희는 언제나 흥수를 게이로서가 아니라 남자로서 소환합니다. 이를테면, 영화에 참 쓸데없이 길고 자세하게 나오는 장면이 있죠. 지석이 재희의 집에 침입해서 행패를 부리고 재희를 때리는 장면이요. 이건 소설에는 없는 내용인데요. 이때 재희는 자기 집에서 도망쳐 나오며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고 지내던 흥수에게 전화합니다. 흥수는 단숨에 재희에게 달려와 지석과 몸싸움을 하고 그를 경찰서에 데려가죠. 이 장면이 이성애자 여성과 게이 남성의 연대를 보여주는 걸까요? 남자친구에게 맞는 여성을 구원하고, 폭력적인 남자와 맞서 싸워주는 남성. 이때 재희는 그저 안전에 취약한 여성이고, 재희에게 필요한 건 게이 친구가 아니라 안전하고 힘센 ‘남자 사람 친구’죠. 영화는 게이 남성의 삶과 존재방식에 대해서는 커밍아웃 외에 어떤 문제도 입체적으로 고민하지 않았고, 이성애자 여성과의 관계에서도 게이는 ‘안전한 남성’으로만 호명돼요. 소설 「재희」에 대한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의 서사적 변용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입니다.


문아영:

저희가 이야기 나누고 있는 작품 모두 공통적으로 성소수자 자녀와 부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소설보다 비중을 늘려서 흥수와 엄마의 갈등을 묘사하기도 했고요. 이렇게 퀴어서사를 만드는 데 있어 성소수자 부모에 대한 재현이 갖는 의미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문우:

저는 대중서사에서 성소수자 자녀와 부모의 이야기가 대부분 커밍아웃과 아웃팅을 둘러싼 갈등을 중심으로 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은 재현도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다큐멘터리 〈너에게 가는 길〉(2021)을 좋아해요. 무조건적인 표용이나 수용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성소수자 자녀와 부모가 내면의 갈등과 고민을 거쳐 어떻게 서로 연대할 수 있을지를 다룬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이런 이야기가 더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문아영:

〈너에게 가는 길〉은 저도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영화 중반에 2018년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 장면인데요. 당시 혐오 세력이 인천퀴어문화축제 참여자들을 둘러싸고 폭력을 행사한 사건이 있었는데,2) 성소수자 부모이자 영화의 주인공인 나비님과 비비안님께서 그 현장에서 성소수자를 향한 노골적인 혐오를 경험하고 이에 맞서 싸워야겠다고 생각하신 장면이 제게 강렬하게 다가왔어요. 성소수자 부모라는 정체성이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연대하면서 정치적인 주체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죠. 앞서 소설 『딸에 대하여』에서 엄마가 그린이 참여한 부당해고 시위를 찾아가 그 혼란과 폭력을 모두 마주하게 됐던 장면을 언급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고요.


오혜진:

두 분 말씀에 공감합니다. 다만 소설 『딸에 대하여』와 『대도시의 사랑법』, 영화 〈너에게 가는 길〉 모두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흔히 가족에 대해 상상하고 가족에 기대하는 내용, 즉 가족주의적인 통념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인간은 누구나 가족에게 이해받고 싶은 욕망이 있고, 부모라면 자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와 같은 가치들이요. 저 역시 〈너에게 가는 길〉을 좋아하지만, 제가 그 영화에서 곱씹는 부분은 이런 대목이에요.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나비님의 인터뷰 내용인데요. 자신의 트랜스젠더 자식이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혐오로 힘들어하는 상황을 묵묵히 지켜보면서, ‘네가 정말로 이 사회에서 더는 살아가고 싶지 않을 때, 내가 너와 함께 스위스에 가서 너의 마지막 길을 함께할게’라는 취지의 이야기요. 기존 가족서사에서 가족 간의 사랑과 유대를 말하는 방식이 주로 가족의 번영으로 귀결된다면, 자녀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하더라도 그 선택을 존중하고 함께하겠다는 부모의 이야기는 생경하죠. 〈너에게 가는 길〉과 성소수자부모모임의 탁월한 지점은 가족중심주의를 강화하는 방식으로만 작동하던 기존의 가족서사를 상대화했다는 데 있는 것 같아요.


문아영:

저는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극 중 영의 엄마가 죽은 후에 변호사가 엄마가 준비해 뒀던 유산을 영에게 전달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이때 드라마가 영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저는 그 장면이 영과 엄마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가치가 얼마나 상반되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영은 엄마에게 지난날의 폭력을 사과받고 싶은 욕망이 있는 반면에 엄마가 영에게 해주고 싶었던 건 그런 게 아니었던 거죠. 엄마는 영이 혼자서는 획득할 수 없는 자산을 물려주는 일이 영의 성적 지향을 받아들이고 그에게 사과하는 일 보다 더 부모의 역할을 다한 거라 생각했을 것 같아요. 물론 엄마의 유산이 영의 상처를 회복시켜 준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요.


오혜진:

영의 아빠가 영에게 매트리스를 선물하는 장면도 있죠. 이 매트리스는 기준치를 넘어선 양의 발암물질이 검출된 걸로 밝혀져요. 영은 엄마가 남긴 집에 선뜻 들어가지 못하는 것과 달리, 아빠가 준 선물은 “최대한 나쁜 곳”에 쓰고 싶다며 매트리스 위에서 데이팅 앱으로 만난 남자와 충동적으로 섹스하죠. 그 밖에도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은 참 재미있었습니다. 물론, 키크고 호리호리한 남성 인물들의 비주얼은 BL물의 캐릭터를 떠올리게 했어요. 예컨대 소설과 드라마에서 영의 남자친구로 등장하는 규호는 영을 ‘뚱고’라고 부르는데요. 소설에서 영은 아무래도 박상영 작가와 겹쳐보게 되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뚱뚱한 고양이’의 준말인 뚱고라는 별명이 재미있었던 반면, 늘씬하고 조그마한 얼굴을 가진 남윤수 배우가 연기한 영은 아무리 ‘뚱한 고양이’라는 뜻으로 바꿨다고는 해도 뚱고라고 별명을 붙이기에는 좀 어색하죠. (웃음) 아무튼 드라마에 재현된 게이 서브컬처와 퀴어정동은 꽤 실감이 났습니다. 박상영 작가가 직접 각본을 썼기 때문에, 세밀한 설정은 조금 달라졌을지언정 원작의 메시지와 태도, 정서 등은 잘 유지된 것 같아요.


ⓒ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 손태겸ㆍ허진호ㆍ홍지영ㆍ김세인, 2024. ⓒ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 손태겸ㆍ허진호ㆍ홍지영ㆍ김세인, 2024.


이문우:

혜진님의 비평을 떠올리면 불온하고 문란하면서 비규범적인 퀴어의 자리를 탐색하는 작업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러한 작업에 대해 좀 더 설명을 덧붙여주실 수 있을까요?


오혜진:

‘불온, 문란, 비규범’ 이런 단어들이 굉장히 급진적이고 센 단어처럼 느껴지는데요. 제가 말하는 그 단어들의 뜻은 이런 겁니다. 『대도시의 사랑법』 중 소설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에 형이라는 인물이 나와요. 저는 형이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퀴어한 인물이라고 생각됩니다. 형은 그냥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4중으로 이상한 사람이에요. 동성애자라는 점에서 이상하고, 동성애자인데도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부인한다는 점에서 또 한 번 이상하죠. 이성애 각본에도, 동성애 각본에도 들어맞지 않는 거예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거쳐 게이로 커밍아웃하고, 동성애자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 식의 어엿한 게이 성장서사, 즉 규범적인 동성애 각본에 들어맞지 않는 ‘병리적인’ 동성애자죠.
한편, 형은 95학번이고 NL 운동권 출신으로 암시됩니다. 그런데 소설의 서사적 현재인 2019년에 1995년 NL의 감각을 갖고 사는 건 이상하죠. 시대와 맞지 않잖아요. 형은 자신의 전화가 도청당한다고 믿고, ‘미치코 런던’, ‘브런치’ 등 서양문물로 표상되는 모든 것에 적대감을 표합니다. 동성애를 “미제의 문물, 자본주의의 산물”3)로 간주해 죄악시하고,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북한 매체 『민족의 진로』 같은 걸 구독해요. 형은 ‘자유민주주의’라는 남한 체제로부터 이탈한 인물이라는 면에서 또 한 번 이상합니다. 게다가 형은 철학서 편집자예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돈을 안/못 버는 직종 중 하나죠. 항상 태극기가 오버로크돼 있는 가방에다가 “요즘은 무장공비도 그러고 다니지는 않”4)을 만큼 벙벙하고 낡아빠진 옷을 입고 다니고요. 형의 엄마는 한때 백화점의 VVIP일 만큼 소비에 중독된 사람이지만, 형은 오히려 엄마가 사댄 수많은 물건에 둘러싸인, 동굴같이 어두운 집에 머물죠. 즉 형은 제대로 돈을 벌지도 않고 소비를 하지도 않는 인물이에요. 형은 글로벌 자본주의 및 시장질서와 불화한다는 면에서 또 이상하죠.
요컨대 형은 이성애규범성과 동성애규범성,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와 글로벌 자본주의에 기반한 시장질서 모두에 들어맞지 않는 이질적이고 비규범적인 존재입니다. 재스비어 K. 푸아는 9ㆍ11 이후 미국의 대테러 서사에서 ‘어떤 신체가 퀴어한 신체로 배치되는가’를 물은 바 있죠. 테러와 싸우는 백인 게이 남성은 애국적이고 건전한 시민 주체가 되는 반면, 긴 수염과 터번 등 백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적 기호를 장착한 무슬림 남성의 신체는 이해 및 번역 불가능한 병리적이고 도착적이고 위험한 신체, 즉 ‘퀴어한’ 신체로 의미화된다고 지적해요. 즉 푸아의 논의에서 ‘퀴어’는 단지 성적 지향의 문제가 아니라, ‘해당 사회의 담론적 지형에서 누구의 신체가 기이하고 이질적이고 위험한 것으로 식별·배치되는가’와 관련되는 개념입니다.5)
그렇다면 박상영 소설에서 ‘퀴어한’ 인물은 누구일까요? 박상영의 게이 인물들은 대부분 대중적인 욕망을 공유해요. 평범한 청년으로서 20대 때에는 연애하거나 군대에 가거나 가족을 만들고, 30대 때에는 취직해서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집을 사는 등 재테크를 수행하죠. 한국 사회에서 정상시민에게 요구되는 덕목들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거예요. 물론 이들은 이 모든 미션들을 성실히 수행해도 결국 ‘시민’의 지위에서 미끄러지는 경험을 하게 되지만요. 그런데 다른 게이 인물들이 정상시민의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반면,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의 형은 한국 사회에서 정상시민과 가장 거리가 먼 위치에 배치되는 사람이죠. 돈도 안/못 벌고, 자유민주주의를 불신하고, 소비도 안 해요. 해당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성적·경제적·문화적 재생산을 거의 수행하지 않죠. 그런 면에서 형은 비규범적이고 불온한 인물, 즉 ‘퀴어’로서 배치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비규범성과 불온성은 자신이 택한 것이기도 하고,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회에서 그런 존재로 식별된 것이기도 하죠.


문아영:

오늘 긴 시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릴게요.


오혜진:

『딸에 대하여』와 『대도시의 사랑법』의 미디어믹스 현상을 분석해 보고 싶었는데, 마침 이런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반가웠습니다. 퀴어비평이 점점 교조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는데요. 이런 자리를 통해 퀴어 문화정치와 퀴어예술을 이야기하는 다양한 방식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오혜진

문학평론가. 서사·표상·담론의 성정치를 분석하고 역사화하는 일에 관심 있다. 평론집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2019)을 썼다. 대학에서 문학비평 및 문화이론을 강의한다.


문아영

퀴어영화 연구그룹 구성원. 퀴어영화에 관한 다양한 글을 기획하고 발행한다. 퀴어예술매거진 『them』의 에디터로 퀴어웹툰에 관한 인터뷰와 대담을 기획했다. 사랑하는 동료들과 서울여성독립영화제를 만들고 있으며, 여성영화와 퀴어영화를 관람하고 연구한다.


이문우

퀴어영화 연구그룹 구성원. 주로 한국퀴어영화에 대해 공부하고 글을 써왔다. 최근에는 교차성의 관점에서 장애와 퀴어 재현을 분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불구 이론을 공부하고 있다. 많은 것에 게으르지만 백합과 레즈비언 콘텐츠는 꾸준히 찾아본다.


본 대담은 비온뒤무지개재단 2024 이창국퀴어연구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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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상영,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문학동네, 2018, 180쪽.
2) 이유진, 「“집단적 린치” “일방적 테러” 인천퀴어축제에서 무슨 일이?」, 한겨레, 2018.09.11. (검색일 :2025.01.11.)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61537.html〉
3) 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창비, 2019, 149쪽.
4) 위의 책, 152쪽.
5) 재스비어 K. 푸아, 이진화 역, 「퀴어한 시간들, 퀴어한 배치들」, 『문학과사회 하이픈』 통권 116호, 문학과지성사, 2016.